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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도'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비유


예수님의 비유 중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던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옷이 벗겨지고 죽도록 두들겨 맞은 채 버려지게 되었다. 마침 종교지도자였던 제사장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죽어가는 그 사람을 보고는 바쁜 걸음으로 피해 지나갔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을 그의 모습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걸음아 날 살려라’ 했던 게다. 다음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그 이름도 거룩한 레위인! 그는 어떤 모습으로 신음하며 죽어가는 그 사람을 대할 것인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채 레위인 역시도 그를 스쳐 지나갔다. 못 본 것처럼!

비유에 등장하는 세 번 째 사람은 당시에 개 취급당했던 사마리아인이다. 하지만 그가 이 유명한 예수님 비유의 주인공이시다.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겼다. 가장 먼저 한 일은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그리고는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를 이용해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정성으로 간호했다. 다음 날에는 주막 주인에게 돈을 건네며 잘 돌봐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간호하는데 돈이 더 든다면 돌아오는 길에 들러 주겠다고 약속까지 하며 자기의 길을 떠났다.

 

 

 
오, 굉장히 부담스럽게 착하고 친절한 사람을 끝내 비유에 등장시킨 예수님의 속셈은 무엇일까? 예수님은 자신을 시험하여 질문하던 율법사에게 물으셨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예수님의 질문에 역으로 말려버린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라고 대답한다. 자신을 의롭게 보이려고 설쳐댄 율법사(눅10:29)는 무지하게 부담스러운 명령을 받고 사라진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

이명박 대통령을 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개발과 번영을 위해 희생당한 용산참사 유가족들이나 정부에 이미 토지를 수용당하고 휘둘리는 충청 농민들 입장에서 볼 때 정부권력과 대통령은 충분히 강도다. 합당한 보상과 인도적 절차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을 몰아내며, 살기위해 저항하는 힘없는 약자를 무력으로 짓밟고 죽이는 것이 법치의 개념으로 통용되는 것과 수정안을 추진하며 세종시에 기업과 대학을 끌어들이기 위해 가난한 자들에게서 뺏어낸 토지를 헐값에 공급하려는 것이 힘으로 다른 이의 것을 취하는 강도의 짓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지붕아래서 한 솥밥 먹는 식구(食口)로부터 강도로 돌변했다는 강도 높은 비난의 소리까지 흘러나오니 일반의 인식이 확실히 장로보다는 강도에 가까운 듯하다. 박근혜 의원이 "집안에 한 사람이 마음이 변해서 강도로 돌변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며 이명박 대통령을 강도로 비유했다. 이는 며칠 전 이명박 대통령이 충청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잘 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추고 강도를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 강도가 왔는데도 너 죽고 나 죽자 하면 둘 다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 것을 박근혜 의원을 겨냥한 발언으로 듣고 이를 받아치기위해 한 말이다.

사실 이대통령의 발언은 세종시 문제로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 내부의 갈등국면을 빗댄 것으로 읽혀야 맞다. 대통령 측근과 박근혜 측근, 곧 친이와 친박의 반목이 끊임없이 국정을 혼란스럽게 하는 가운데 한 나라의 지도자가 내뱉을 수 있는 우려일 수 있겠다는 것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허나 우려의 표현이든 의도적 발언이든 대통령의 강도론은 참 어처구니 없다. 온통 싸움 투성이 아닌가! 잘되는 집안은 싸우다가도 강도가 오면 강도와 싸워 물리치고 다시 싸운다니 하는 말이다. 강도를 아무리 잘 물리쳐도 평화의 시절은 결코 오지 않겠다. 어찌되었든 이명박 대통령은 졸지에 강도가 되었다.

옷 벗겨지고 심하게 두들겨 맞아 신음하며 죽어가는 이 땅의 아픈 모습들 어이하면 좋을까. 옷 찢겨 죽게 된 강도 만난 사람처럼 중장비의 굉음과 폭력 앞에 갈기갈기 파헤쳐진 채 신음하고 있는 4대강. 죽어가는 사람 주막에 옮겨 간호하기는커녕, 죽은 사람 1년 동안 냉동실에 방치하는 잔인한 권력. 기업과 대학의 찬란한 번영을 위해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의 병적인 과밀화 현상의 해결은 안중에도 없고, 눈물짓는 서민들은 꼬드기고 얼르고 달래야 할 애들로만 보는 기득권층은 한 마디로 강도다. 아무튼 '강도론' 잘 못 썼다가  싸움판을 더 키워버린 이명박 대통령의 비유. 강도만난 것처럼 당혹스러운 형국이다.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지 못하고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니 그의 말은 독한 창질의 썩어져 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고 이명박이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이명박 대통령은 가서 강도같이 하라는 말씀으로 오해했는가 보다.

글/민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