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에서 날아오는 메달 소식에 나라가 연일 뜨겁다. 계속 터지는 승전보에 가족의 경사처럼 한마음으로 기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한 사람의 실수가 몰고 온 파장 때문에 분노가 식을 줄 모른다. 그 분노의 불길이 잡히지 않고 더욱 거세지기에 가만히 들여다보니 단순히 메달을 놓쳐서가 아니다. 경기 중 실수를 한 선수의 과거 행보를 볼 때 이번 실수가 그저 실수로 너그러이 용납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쇼트트랙 이호석 선수 이야기다. 지난 14일 쇼트트랙 남자 1500m 경기에서 이 선수가 무리한 끼어들기를 시도해 성시백 선수와 엉켜 둘 다 메달을 놓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선두에 있던 이정수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금, 은, 동 메달을 전부 거머쥘 수 있었던 터라 아쉬움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 남자의 과거’가 어떠했기에 실수를 실수로 용납하지 않고 분노의 불길은 잡히지 않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스포츠는 유독 파벌 문제가 심각하다. 풍운아 추성훈은 유도계의 파벌을 견디지 못하고 일본국적을 선택했다. 빙상경기의 파벌도 만만치 않다. 소위 한국체육대학(이하 한체대)파와 비한체대파의 구도가 형성되어 코치와 선수들이 구도에 따라 나뉘게 된다. 이런 파벌 구도 속에서 코치가 선수에게 특정선수를 위해 1위 자리를 내놓으라고 주문하는가 하면 선수 간 폭행사건, 빙상연맹의 분명치 못한 처신이나 뇌물 수수, 빙상연맹과 특정 코치의 입장만 대변하는 객관성을 잃은 언론의 태도 등이 항상 문제시 되어왔다. 그러한 논란 속에 이호석 선수는 언제나 부정적인 이미지로 오버랩 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동계 올림픽에서 3관왕, 세계 선수권 5연속 재패의 신화를 이룬 안현수 선수가 파벌문제로 인해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것과 이호석 선수로 인해 그동안 받은 정신적인 피해와 편파적인 언론보도로 겪게 된 억울한 사연 등이 다시 공론화 되면서 이번 경기의 실수와 더불어 이호석 선수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경기를 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른다. 금, 은, 동 싹쓸이를 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팬스에 부딪힌 후에 차디찬 얼음장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성시백 선수의 모습이 너무나 가슴 아팠던 것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또 떠올랐다. 한 번도 본적은 없지만 그의 어머니,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아니 얼마나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까.
내가 그의 가족이 되어보니 뒤로 넘어갈 정도로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 아들 성시백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고 피나는 노력을 했을까를 생각할 때, 이호석 선수의 무리한 경기운영이 질타 받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게다가 위에 언급했듯이 파벌문제가 심각한 빙상계에서 성시백 선수가 안현수 선수 라인이다 보니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등의 몰매를 맞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이호석 선수의 끼어들기를 과거 그의 잘못과 연결 지어 무차별 공격을 가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일이다. 축구같이 몸을 부딪히는 경기나 쇼트트랙같이 개인기록을 내야하는 경기는 경쟁이 치열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반칙도 하고 인간이기에 실수도 하게 마련이다. 그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 결코 아니다. 누가 봐도 작전과 의도가 분명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경기 중 일어난 실수가 의도된 것인지 아닌지는 본인 외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빙상의 세계 저변에 깔려있는 파벌구도와 수준 낮은 코치와 빙상연맹의 잘못된 관행에 어린 선수들이 연루되어 왔던 문제는 과감한 수술로 개혁을 이루어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조절되지 못하고 다듬어지지 못한 인격으로 인해 상처를 남기는 몇몇 선수들의 이기적 행태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돌이켜야 할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성시백 선수의 어머니가 이호석 선수를 오히려 위로하고 격려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나쁜 마음으로 그런거 아니니 다 잊고 남은 경기에 전념하라’는 말을 건네며 아들 같은 이호석 선수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했다는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그런 성숙한 반응을 보일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는 이호석 선수가 (과거의 잘못이 있었다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훌륭한 행동이었다. 위대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마음에 원망과 분노가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 마음을 잘 다스린 것이다.
인터넷과 감시카메라로 뒤덮인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 한 사람의 내뱉은 말과 과거의 행적은 삽시간에 퍼진다. 선한 행실이 담긴 작은 사진 한 장으로 하루아침에 감동천사로 등극되기도 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언행이 유포돼 몹쓸 사람으로 전락되기도 하는 시대다. 그러니 성경 말씀대로 늘 깨어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낮과 같이 행실을 단정히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깨어있고 행실을 단정히 해도 세상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게 마련이다. 억울함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오해는 당사자들 간 이해의 부족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의 모함으로 빚어진다. 있지도 않은 일을 꾸며 사람을 궁지에 빠트리고 사실과 다른 것을 진실처럼 퍼트려 곤란을 겪게 하는 것이 모함이다. 우리를 흥분시키고 감동을 주는 스포츠 선수들은 대개가 아직은 나이가 어린 청소년, 청년들이다. 오직 꿈과 푯대를 향해 건강한 스포츠 정신으로 무장하여 성장해야 할 그들이 빙상연맹이나 파벌에 의해 나뉜 코치 등 권력구조의 횡포와 조잡한 언론플레이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금빛 물결이 가득한 벤쿠버 올림픽 소식들 속에서 마냥 기쁘지 않은 것은 그 어린 선수들의 억울함과 분노가 어른들 때문인 것 같아서 이다. 누가 누구에게 상처를 주었건, 질타를 받고 있는 이호석 선수를 포함하여 선수들 모두 희생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셉과 그의 형들이 떠오른다. 형들의 파벌적인 패거리 행동으로 왕따가 된 요셉은 구덩이에 갇혔다가 노예로 팔려갔다. 그리고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언론플레이로 모함을 당한 요셉은 강간범으로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갇혔다. 억울함을 당한 인생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 억울함과 시련을 통과하고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가뭄의 고통 속에 자신을 찾아온 형들을 용서하고 끌어안았다.
빙상계의 파벌과 저질 언론플레이의 희생양이었던 안현수 선수와 이번 경기에서 아픔을 겪은 성시백 선수가 시련을 딛고 재기하여 요셉처럼 다시 우뚝 서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수준 낮은 코치와 빙상연맹의 잘못된 관행에 휘둘렸던 이호석 선수는 성시백 선수 어머니의 따뜻한 용서와 위로에 마음과 인격을 새롭게 하여 힘을 얻길 바란다. 그래서 정치인 때문에 피곤한 이 나라 국민들에게 그 힘 오랫동안 골고루 나눠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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