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복판에서

노메달이어도 괜찮습니다

집념과노력 2010. 2. 20. 21:56

사람이나 상황을 대할 때 항상 염두 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은 아주 유익한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대개 군중 속에서 생각과 정서가 휘둘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관심과 눈’을 소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모두가 주목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더불어 좋아하는 것은 무척 쉬운 일입니다. 다들 좋아하니 별 문제 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듯이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 일로는 아무런 상도 받을 수 없습니다.(마5:46)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들보다 더하는 것이 뭐가 있느냐”고도 물으십니다. 사랑하고 인사하는 것 자체를 언급하신 것이 아니고, 세리나 이방인보다 ‘더 나은 게 뭐가 있느냐'는 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그 정도는 다 하기 때문이겠지요.

벤쿠버에서 동계 올림픽이 한창입니다.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메달리스트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태극기를 바라보는 금메달리스트에게 관심이 집중되게 마련입니다. 최근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동갑내기 친구 모태범, 이상화 선수입니다. 며칠 전 그들이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언론마다 두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는데다 그들의 성장사와 학창시절 등이 공개되고 귀여운 행동들이 계속 보도되기 때문에, 금메달과 입 맞춘 그들은 이미 대한민국의 떠오르는 국민 남동생, 여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에서 그 어떤 메달도 목에 걸지 못한 한 선수에게도 언론과 네티즌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분야는 다르지만 홍수환 챔피언처럼 4전5기의 꿈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규혁 선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각종 국제 대회에서 세계신기록을 내며 수 없이 정상에 올랐고, 한 번 나가기도 힘든 올림픽을 다섯 번이나 출전하는 투혼을 보였기에 ‘불사조’ 또는 ‘살아있는 전설’로 불려지는 대표팀의 맏형입니다.

4전5기가 말해주듯 그에게는 이번이 5번째 동계 올림픽 출전이며 올림픽에서의 첫 메달을 향한 마지막 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가 눈물을 흘린 곳은 태극기 휘날리는 시상대가 아니라 벤쿠버 한 호텔에서 진행된 기자 회견장이었습니다. 그는 끝내 올림픽 메달을 목에 걸지 못한 채 20년 동안의 올림픽 도전기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많은 언론이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에게 주목하는 것은 그의 화려한 경력과 도전의 역사가 남달랐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기자회견을 피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오히려 주목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 것이 그에게 더 필요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피하고 싶을 만큼 괴로워하는 그에게 조명을 비추는 일은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1등을 하는 것보다, 금메달에 입 맞추는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충분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비록 그가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어도, 금메달을 목에 건 어린 후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손꼽으며, 인터뷰를 할 때마다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이규혁 선수를 말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좌절하지 않고 다시 올림픽에 도전하는 모습을 지켜본 우리 국민들은 누구보다 그를 자랑스러워합니다. 언제나 역사의 기록과 우리의 기억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를  비중 있게 다루었지만, 이규혁 선수만큼은 그 기록과 기억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것만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한 사람의 발자취가 남긴 가치를 짚어본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물론 언론이 이규혁 선수를 주목한 것은 ‘소외받은 사람’을 향한 진정한 조명이 아니라 ‘소외시키면 안 될 위대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테지만, 어쨌든 올림픽 ‘노메달 선수’를 향한 집중조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결심하게 됩니다. 늘 '인생의 노메달'들을 찾아다니셨던 예수님의 관심과 눈을 소유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희망을 가져 봅니다. 꼴찌를 해도, 메달에 키스를 못해도 웃을 수 있는 우리 사회를 마음속에 그려봅니다. 행복하게 공부하고 행복하게 운동하고 행복하게 일하는 사회를 꿈꾸어 봅니다.

1000m 엔트리에서 제외된 후 쓸쓸히 먼저 귀국한 이강석 선수나 오늘도 활주용 썰매에 엎드려 외로이 질주했지만 아깝게 탈락한 스켈레톤의 조인호 선수같이 마음이 허전한 이들 다 모아 국민의 이름으로 메달을 수여하는 행복하고 재미있는 우리나라를 꿈꾸어 봅니다.